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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A는 어떻게 태어났나 — 판크라티온에서 UFC까지
오늘날 우리가 보는 MMA는 하나의 발명품이 아니다. "어느 무술이 최강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브라질, 일본, 미국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실험되다가, 1993년 UFC 1에서 상업적으로 폭발했고, 역설적이게도 그 실험의 결론으로 '종합'이라는 새로운 스포츠가 남았다.
이 글은 그 네 개의 축 — 고대의 원형, 브라질 발리 투도, 일본 슈트 레슬링, 그리고 미국의 상업화와 스포츠화 — 을 따라 MMA 탄생사를 정리한다.
고대의 원형 — 판크라티온 (기원전 648년)
고대 그리스 올림픽 종목이었던 판크라티온(Pankration)은 타격과 그래플링을 모두 허용한 최초의 '종합격투' 기록이다. 물기와 눈 찌르기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기술이 허용됐다. 다만 현대 MMA와 직접적인 계보 연결은 없다. 개념적 조상일 뿐이다.
브라질 발리 투도 — 실질적인 뿌리 (1917~)
현대 MMA의 실질적 기원은 브라질이다. 일본 유도가 마에다 미츠요는 브라질 벨렝에 정착했고, 1917년 그의 시연을 본 14세의 카를로스 그레이시가 입문했다. 병약해서 정식 수련이 금지됐던 동생 엘리오는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체격 열세를 보완하는 방향 — 힘 대신 지렛대 원리 — 으로 개조했고, 이것이 브라질리언 주짓수(BJJ)의 출발점이다.
그레이시 가문은 자신들의 무술이 최강임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이든 허용'이라는 뜻의 발리 투도(Vale Tudo) 대결을 수십 년간 벌였다. 다른 무술 수련자 누구의 도전이든 받아준 '그레이시 챌린지'가 유명하다. 1951년 유도 전설 기무라 마사히코가 엘리오를 꺾은 경기는 이 시대의 상징적 사건으로, 그가 사용한 팔 관절기는 지금도 '기무라 록'으로 불린다.
일본의 계보 — 슈트 레슬링에서 판크라스까지
일본에는 별도의 계보가 있다. 1976년 안토니오 이노키 vs 무하마드 알리의 이종격투기전이 상징적 출발점이었고, 프로레슬링에서 '진짜 싸움'을 추구한 슈트 레슬링 운동이 UWF를 거쳐 독자적인 단체들로 이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 UFC는 최초의 MMA 단체가 아니다. 사야마 사토루가 만든 슈토(Shooto)는 1989년 5월 도쿄 고라쿠엔 홀에서 이미 프로 대회를 열었고(UFC보다 4년 앞선다), 판크라스의 첫 대회는 1993년 9월 21일로 UFC 1보다 약 두 달 빠르다. 이후 1997년 출범한 PRIDE FC는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MMA 무대였다.
미국의 잊힌 선구자 — Tough Guy Contest (1980)
미국에도 UFC보다 13년 앞선 시도가 있었다. 피츠버그의 CV Productions(빌 비올라, 프랭크 칼리구리)는 1979년에 이미 혼합격투 규칙을 성문화했고, 1980년 3월 펜실베이니아에서 미국 최초의 규제된 혼합격투 대회 'Tough Guy Contest'를 열어 130여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1983년 펜실베이니아 상원법안 632호(일명 Tough Guy Law)로 금지당하며 소멸했다. 규제와 싸우며 살아남는 MMA사의 패턴이 여기서 처음 나타난다.
UFC 1 — 폭발점 (1993년 11월 12일)
엘리오의 장남 호리온 그레이시는 광고 기획자 아트 데이비와 함께 WOW Promotions를 세우고, 방송사 SEG와 손잡아 '어느 무술이 최강인가'를 가리는 8인 토너먼트를 기획했다. 이것이 덴버에서 열린 UFC 1이다. 체급도 라운드도 글러브도 없이 물기와 눈 찌르기만 금지한 채, "There are no rules"라는 문구로 팔렸다.
여기서 가장 체구가 작은 호이스 그레이시가 복서, 가라테 선수, 레슬러를 전부 서브미션으로 꺾으며 우승했다. 그래플링의 위력이 전 세계에 증명된 순간이었고, 이 충격이 격투기 판 전체를 바꿨다.
규제 위기 — "인간 닭싸움" (1996~2000)
초기 UFC의 무규칙 노선은 정치적 역풍을 맞았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1996년 이를 '인간 닭싸움(human cockfighting)'이라 부르며 50개 주지사 전원에게 금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고, 36개 주가 무규칙 격투를 금지했다. 뉴욕은 UFC 12 전야에 금지를 통과시켜 대회가 하룻밤 새 앨라배마로 옮겨지기도 했다.
케이블 PPV 사업자들이 잇따라 UFC를 퇴출하면서 가시청 가구가 최대 3,500만에서 1999년 750만으로 쪼그라들었다. UFC는 사실상 고사 직전까지 몰렸다.
통합 규칙과 스포츠화 (2000~2005)
살아남기 위해 UFC는 체급, 라운드제, 글러브, 반칙 규정을 도입했다. 뉴저지 주 체육위원회(NJSACB)는 2000년 9월부터 규칙 심사를 조건으로 MMA 대회 승인을 시작했고, 2001년 4월 3일 트렌턴에서 열린 규제기관·프로모터 합동 회의에서 'MMA 통합 규칙(Unified Rules of MMA)'이 합의됐다. 이 규칙은 이후 북미 전역의 표준이 된다.
고사 직전의 UFC를 2001년 1월 카지노 재벌 퍼티타 형제의 주파(Zuffa)가 단돈 200만 달러에 인수했고, 데이나 화이트가 대표를 맡았다. 2005년 리얼리티쇼 The Ultimate Fighter의 성공 — 특히 포레스트 그리핀 vs 스테판 보너의 피날레 — 을 계기로 UFC는 주류 스포츠로 올라섰다.
'종합'의 역설적 탄생
중요한 지점은 이것이다. UFC는 원래 '최강 무술 가리기'였는데, 몇 년 안에 결론이 나버렸다 — 단일 무술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 선수들은 타격(복싱·무에타이), 테이크다운(레슬링), 그라운드(BJJ)를 전부 훈련하기 시작했고, 이 크로스 트레이닝의 결과물이 오늘날의 Mixed Martial Arts다. MMA는 스타일 대결의 승자가 아니라, 그 대결이 사라지면서 남은 결과물이다.
이름도 나중에 붙었다. 'mixed martial arts'라는 표현이 활자로 처음 등장한 것은 LA타임스 평론가 하워드 로젠버그의 1993년 11월 UFC 1 리뷰였고, 단체가 공식적으로 처음 쓴 것은 1995년 Battlecade의 릭 블룸이다. 초기의 'NHB(No Holds Barred)'라는 이름은 규제 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스포츠 이미지를 위해 MMA로 대체됐다.
